[연재] 교사들에게 보내는 편지(3) : 좋은 수업에 대한 관점들
[연재] 교사들에게 보내는 편지(3) : 좋은 수업에 대한 관점들
  • 글로벌교육뉴스
  • 승인 2018.08.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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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재(고려대학교 인문대학장)의 교육 레터 시리즈
 
 오영재 교수의 교사들에게 보내는 편지(3) 

좋은 수업에 대한 관점들

 교사들은 수업 전문가입니다. 교사들은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만나며, 수업을 통해 자신들의 교육철학을 실현합니다. 따라서 교사들은 수업을 잘해야 하며, 수업에 교단생활의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교사들에게 있어 수업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며 좋은 수업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교육학자들은 교과교육과 인성교육을 분리하여 다루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교과교육이 잘 되면 인성교육이 잘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잘 가르친 교과교육은 훌륭한 인성교육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교과교육과 인성교육은 모두 수업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업을 잘하면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이 모두 잘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학교교육과정에서 수업만큼 중요한 활동이 없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인식에서, 오늘 편지에서는 수업에 대한 몇 가지 관점들을 같이 생각해 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수업모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수업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나아가 좋은 수업이라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수업을 구성하고 있는 교사, 학생, 교과, 시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교사와 학생, 교과는 상호관계에 있고 이 세 요인들의 관계가 잘 이루어졌을 때 수업이 가능합니다. 예컨대, 교사가 교과를 가르치지만 학생이 이를 소화하지 못하면 실제 수업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교사와 학생이 인격적으로 활발하게 교류하지만 교과가 목표로 하고 있는 내용을 매개로 하지 않는다면 이는 수업이라기보다 인간 사이의 교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즉, 교사가 다양한 교류작용을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교과내용을 최대한 내면화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수업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시간 요소를 더하면, 수업은 교과, 교사, 학생 간의 긴밀한 교류 작용이 특정 시점에서 일회성으로 이루어진 후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속적으로 구현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좋은 수업에 대한 교육학적 관점은 흔히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좋은 수업은 가르치고자 하는 교과의 목표를 잘 달성한 수업이라는 관점입니다. 수업 목표주의적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수업은 나선형 교육과정에 따른 구조와 수준이 있습니다. 모든 교과는 교과 자체의 목표, 학교 수준별 목표, 학년별 목표, 월간 목표, 주간목표 그리고 차시별 목표가 있습니다. 이러한 교과의 목표는 하나의 사슬처럼 연계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수준이 높아지는 형태로 구조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 차시별로 혹은 주 및 월 단위로 가르쳐야 할 교과의 목표가 있는데 이를 예정된 대로 잘 가르치면 수업의 목표가 달성된 것으로 평가하고 이를 좋은 수업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이는 목표와 가시적 행동의 변화를 강조하는 행동주의적인 교육관(Behaviorism)이 반영된 수업관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음으로 좋은 수업은 교사와 학생 간의 인격적인 교류작용이 많아야 한다는 소위, 관계주의적 관점이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는 수업은 교사와 학생 간의 인격적, 지적, 정서적 교류과정이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이 서로 긴밀하게 교감하고 느끼는 수업이 좋은 수업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사실, 수업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총체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기 때문에 상당히 타당한 수업관이라고 판단되기도 합니다. 통찰과 각성, 인격적 만남과 실존적 변화를 강조하는 실존주의적 교육관(Existenism)이 짙은 수업관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교사가 학생들을 많이 알고, 학생들을 하나하나 존중하며, 학생들과 마음의 나눔과 교호작용을 좋아하는 교사들에게 호감이 가는 수업관입니다. 사실 수업시간에 학생 이름을 정겹고 친절하게 불러가며, 학생들의 작고 예민한 일상의 변화를 감지해가며, 그 아이들의 정신적 흔들림과 지적 목마름을 헤아려 수업하는 교사들은 존경받는 스승이라 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청소년기에 그러한 스승을 만나 수업을 받으며 성장한 아이들이 훗날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진보를 위해 기여할 인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관점에서는 수업이 갖는 도달해야 하는 행동적 목적과 목표 요소가 뚜렷하게 인지되지 못하고 있는 약점이 있습니다. 또한 교과 내용의 내면화 수준과 정도에 대한 초점이 흐려 보이는 수업관이기도 합니다. 


 또한 좋은 수업은 학생 스스로 탐구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제공하는 수업이라는 소위 구성주의적 관점(Constructivism)이 있습니다. 이는 진보주의적 교육철학을 계승하고 있는 수업관이라 할 수 있으며, 학생의 자기 주도적, 창의적, 문제 해결적, 탐구학습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학생의 학습능력과 학습 능력을 고려해가며, 교사가 주관하기 보다는 학생 스스로 수업에 참여하고 수업을 구성해가는 수업이 좋은 수업이라는 것입니다. 다가감과 기다림, 자연스러운 드러남과 환경과의 어울림이 중시되는 동양적 자연주의 교육관의 표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수업,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수업, 학생들이 창의적으로 해결해가는 수업... 이는 하나의 이상적 수업모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훗날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지금의 문제가 아니며, 교사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며, 결국 학생 스스로 갖추어진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헤쳐 나가야 할 문제 상황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 수업관이 더욱 좋은 수업으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해 드린 이 세 가지 수업관이 교육학계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 대표적 수업관들입니다. 어떻습니까? 선생님들께서는 이 수업관 중에서 어느 한 가지 수업관에 전적으로 의지하시며 수업을 하십니까? 아니면 한두 가지 수업관이 섞인 형태의 수업을 선호하십니까? 그것도 아니면 이 세 가지 수업관이 적당히 혼합된 수업을 하고 계십니까?  


 저는 수업을 이렇게 세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수업을 바라보는 오래된 시각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에 익숙한 서구의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현상을 나누고 자르고 이어보고 그리하여 새로운 전체를 형상화하는데 익숙한 서양 사람들의 세계관이 반영된 분류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 가지 수업관이 수업을 보는 대표적 시각 혹은 접근방법임을 잘 알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수업은 이 세 가지 관점이 고루 반영된 수업이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수업은 교과의 목표, 교육 주체 간의 인격적 교류, 학습자의 주도적 학습 능력 배양 등이 균형 있게 반영된 수업일 것입니다. 굳이 지칭한다면, 수업을 이루는 세 요소의 균형적 실천을 지향하는 총체적 수업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세 요소의 적절한 배합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 요소의 질적 섞임을 통해 아주 새로운 형태의 관계양상이 나타나는 수업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과가 지향하는 목표를 염두에 두면서도, 학생들과의 교류작용을 통해 자기 주도 학습능력을 배양시키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학생들의 정신적 각성과 지적 계발을 이루어내는 그런 수업을 지향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사들에게 있어 수업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는 것이 일반적 연구결과입니다. 대학 교수들 사이에 수업에 관해 우스갯소리로 잘 하는 농담이 있습니다. 30대 교수는 자기도 잘 모르는 것을 가르치고, 40대 교수는 자기가 아는 것만 가르치며, 50대 교수는 학생들이 아는 것들을 가르치고, 60대 교수는 생각나는 대로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초중등학교 교사들도 교직경력에 따라 수업에 대한 마음가짐과 실천행동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초임교사 시절에는 정성어린 수업 준비와 열성적인 수업행동을 보이지만 수업에 대해 자신이 없어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대략 교직경력 3-5년 쯤 되면 수업에 자신감이 생기고 상당한 수준에 이르다가, 교직경력 8-10년에 이르면 수업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계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교사들은 수업에 대한 매너리즘이 생기고 급기야 수업을 때우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면서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사랑하기 어렵듯이, 교단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좋은 수업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수업을 아끼고 귀하게 생각하는 수업관을 갖고 있는 교사는 수업을 소홀히 하거나 때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수업이 무너지면 교사 자신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사명감과 자존심 하나로 사는 교사로서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수업이 갖는 의미가 그러할 진대, 어찌 수업을 소홀히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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