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학부모들에게 보내는 편지(2) : 자녀를 위해 학부모들이 하지 않아야 할 언행
[연재]학부모들에게 보내는 편지(2) : 자녀를 위해 학부모들이 하지 않아야 할 언행
  • 글로벌교육뉴스
  • 승인 2018.07.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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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재(고려대학교 인문대학장)의 교육 레터 시리즈
 
 오영재 교수의 학부모들에게 보내는 편지(2) 

자녀를 위해 학부모들이 하지 않아야 할 언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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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기로 유명합니다. 자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리가 되는 일도 주저하지 않고 하려합니다. 학부모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기대가 그 무엇보다 크고 높습니다. 자녀들을 향한 학부모들의 기대와 지원이 그렇듯 높고 클수록 교육학적 관점에서 볼 때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꼭 해야 할 언행과 하지 않아야 할 언행들이 있습니다. 특히, 사춘기에 있는 중등 학생들에게는 무심결에 던진 잘못된 말 한 마디나 행동이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번 편지는 학부모님들께서 자녀들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 하지 않아야 할 언행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학부모들께서는 자녀들을 당신들의 소유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낳은 부모지만, 자녀들은 학부모들의 소유물이나 부속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라 할지라도 훼손할 수 없는 인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인권은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자연권적인 생명권입니다. 종교적인 표현을 빌리면, 자녀들은 하느님이 주신 생명이며, 인간의 형태로 부활한 주님이신 것입니다. 억겁의 세월동안 한없는 선(善)의 업(業)으로 인하여 인간으로 윤회한 부처인 것입니다. 자녀들은 학부모님들의 소유물이 아니며, 각자가 고유한 생명의 결과 색깔 그리고 향기를 가진 우주의 선물입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길러야 할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주 그 자녀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여, 마치 자신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너무나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곤 합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학부모들은 자주 자녀들을 향해 “넌 죽으나 사나 내 자식이야. 내 말 들어!”, “너 죽고 나 죽자” 등과 같은 말을 하곤 합니다.  자녀들이 모멸감이나 좌절감을 느끼는 부정적인 언행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녀들은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 상 예민하고 섬세한 정서와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는 성장체입니다. 자녀들은 자주 난 누구인가? 나는 귀한 존재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좋은가? 사랑과 우정은 영원한 것인가? 신은 존재하는가? 등과 같은 진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러한 자녀들에게 “쓸 데 없는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 “넌 하는 짓이 왜 그 모양이니?” 등과 같은 언행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자녀들의 능력에 대한 불신과 회의 찬 언행을 삼가야 합니다. 자녀들의 인간적 가치나 능력을 특정 시기의 성적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성적이 좋지 않은 자녀들을 향해 “어찌 그리 잘 하는 일이 하나 없니?”, “넌 누굴 닮아 그 모양 그 꼴이니?”, “그럼 그렇지 뭐, 너가 하는 일이 그렇지 별 수 있겠니?”, “해봐야 별 수 있겠니?”등과 같은 모멸감을 주는 언행은 자녀들에게 정말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그러한 언행은 무엇인가 진지한 생각을 하며 정신적으로 성장하려는 자녀들의 의지와 꿈을 짓밟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부모는 꿈을 주고 격려하는 부모입니다. 자녀들의 꿈을 짓밟는 부모가 어찌 좋은 부모가 되겠습니까? 언어는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는 양날의 칼입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꿈을 존중하지 않는 부모를 보며, 자녀들은 자신들의 세계와 고민을 이야기할 다른 사람을 찾게 됩니다. 자녀들은 그러한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부모를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자녀들을 무관심하게 방임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네 인생이니 너 일 너가 알아서 해. 난 몰라!” 하며 자녀들의 생활과 학업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면, 자녀들은 자신에 대한 부모의 무관심을 느끼고 심한 좌절감을 겪게 됩니다. 지나친 기대와 간섭 그리고 과도한 행동 통제가 과열된 교육열이라면, 방임은 차갑게 식은 소외의 교육열입니다. 과잉과 방임 모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의 성장과정에 따라, 자녀들의 신체적 및 정신적 성숙과정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그 사용하는 언어와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자녀들이 어린 시기에는 부모의 적극적이고 보호적인 언행이 효과가 있지만 커 갈수록 자녀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해주고 간접적인 지원과 보호의 언행이 더 좋다고 합니다.


  자녀들의 친구나 자녀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나 기호를 비난하거나 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들과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냥 좋아하는 친구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학부모님들은 간혹 친구를 사귀는데 일종의 도구적 기준을 두고 자녀들로 하여금 따르도록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량, 학부모님들은 공부 잘 하는 아이, 자녀들에게 도움이 되는 아이들을 좋은 친구라고 합니다. 유유상종이라고 하며 그러한 친구들은 자주 만나고 같이 지내라고 합니다. 공부를 못하거나 자녀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자녀들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는 찬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거나,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런 얘들하고 놀지 마라", "같이 친구할 얘가 그렇게 없어 그런 아이하고 친하니?"라는 언행이 그에 속합니다. 


  50 중반에 이르기까지 저는 공부를 잘 하는 친구, 그냥 좋은 친구, 다투며 지낸 친구,  시골 깡패로 지낸 친구, 심지어 저를 괴롭힌 친구 등 여러 친구들을 사귀며 살아왔지만, 오늘에 이르러 돌이켜보면 공부를 잘 했던 친구보다 역시 그냥 좋아했던 친구가 가장 좋은 친구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때 전교 수석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친구는 지금 교장선생님이 되었고, 싸움을 잘해 독불장군처럼 시골 깡패처럼 지냈지만 그 당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저를 좋아하고 함께했던 그 친구는 지금 형사반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로 다른 두 유형의 친구를 구별하여 대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 당시 저는 40명 정도 되는 학급에서 10등정도 수준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성적이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으며, 열심히 학교 다니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학교 성적만으로 인생의 여정과 행복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 체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가능성을 찾아가며 무엇보다 인내하며 집중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대학 교수가 된 친구들의 공통된 특징은 머리가 뛰어나기 보다는 끈질기게 노력하며 쉽게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 세상과 사물을 새롭게 보고자 하는 일단의 창의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인생의 일, 추구해야 할 꿈과 가치를 확신하고 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취미나 기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녀들이 좋아하거나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무시하고 학부모님들의 요구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이 음악을 좋아하거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면 안 되나요?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예술적, 인문학적 안목과 소양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 예술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를 융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운동을 즐겨하거나,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하여 실천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자녀들로 하여금 악기 하나쯤 잘 다루게 하거나 문화예술 분야의 공부에 관심을 갖도록 장려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쉽지 않은 도전과 과제를 헤쳐 나가야 하는 인생의 여로에서 가끔 지치고 외로운 몸과 영혼을 잠시 쉬게 하는 데는 음악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고즈넉한 언덕이나 숲 길가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쉬고 있는 사람, 멋있고 내공(內功)이 강해 보이지 않습니까? 저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 온 세대들은 악기를 배우거나 문화예술 공부를 할 여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간혹 강의할 때 교실에 악기를 가지고 들어가 학생들에게 감미로운 음악을 선물해주는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전 아직 교단에 서야할 세월이 10년 이상이 남았기 때문에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이제라도 대금이나 피리를 배울까 준비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학부모님들께서는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생각하여 해결할 수 있도록 정신적, 심리적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들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갈 길 바쁜 경쟁시대에 그러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부모님들이 많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급하고 애타는 마음을 잠시 접고 자녀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맑게 응시(凝視)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응시하는 부모 자식관계는 신뢰와 사랑을 줍니다. 우리 학부모님들은 서로 응시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말하고 특정 행동을 요구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사모의 마음이 가득한 눈으로 서로 응시하는 영화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결과 색깔은 달라도 부모와 자녀 간계도 그러한 응시의 관계여야 합니다. 마주보고 웃으며 함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간계도 그러한 응시의 관계여야 합니다. 마주보고 웃으며 함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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