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의 삶을 통해 바라본 이란 혁명, '페르세폴리스'
한 소녀의 삶을 통해 바라본 이란 혁명, '페르세폴리스'
  • 김준모 기자
  • 승인 2018.11.13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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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재개봉 예정
ⓒ 영화사 진진
ⓒ 영화사 진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영화 <페르세폴리스>에 나오는 이란은 '헬조선'이라는 인터넷 신조어가 유행하던 대한민국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지옥이 된 한국(조선)을 떠나야 한다"는 뜻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의 문, 부정부패가 만연한 현실에 대한 답답함에서 나온 말이었다. 영화 <페르세폴리스>의 마르잔은 부모님에 의해 '진짜' 나라를 떠나게 된다. 마르잔의 부모님은 혁명 후 나라가 바뀌기를 원했지만 오히려 더 나빠졌기에 딸을 유럽으로 보낸다.
 
<페르세폴리스>는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이란 혁명의 역사를 말하는 애니메이션이다. 마르잔이 어린 소녀였을 당시 이란은 왕정이었다. 팔레비 왕조는 냉전 시대 당시 친미 정책을 펼치며 서구화에 돌입했다. 이에 이슬람 성직자들을 비롯한 반정부 시위가 불었고 국왕은 이를 탄압했다.

이란의 근대화는 신흥계층에게는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줬지만 이슬람 원리의 전통은 붕괴되었고 농촌과 상공업이 붕괴되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는 혼란을 겪었다. 여기에 비밀경찰 사바크는 반정부 운동을 감시하고 억압했다.
 
하지만 팔레비왕조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축으로 한 광범위한 국민결합대운동에 결국 붕괴된다. 마르잔의 말을 빌리자면, 당시 부모님은 기뻐했고 마을 주민들은 모두 '자신 덕분에 혁명이 성공했다'고 혁명군이었던 양 자랑했다. 왕정을 칭송하던 학교 선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교과서에서 왕실의 사진을 찢으라고 가르쳤다. 마르잔의 부모는 이제 세상이 바뀌고 감옥에 갇힌 마르잔의 외삼촌 아노쉬도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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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잔은 혁명가인 외삼촌 아노쉬를 좋아한다. 마르잔과 아노쉬는 '코드'가 잘 맞는 사이였다. 학교에 들어간 마르잔은 마이클 잭슨을 좋아하며 펑크에 심취해 있다.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혁명은 성공했다. 이제 그들을 위한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마르잔은 그리 여겼다. 하지만 혁명 후 이란은 더 강압적인 사회로 바뀌게 된다. 이란 혁명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던 냉전 시대와는 색이 다르다. 그들의 혁명은 종교 혁명이며 이슬람원칙주의자들이 집권을 하며 삼권분립을 초월한 권리를 종교지도자들에게 부여한다.

제정일치 사회에서 서구의 문물은 나쁜 것이 되어버리고, 여성은 정조와 희생을 강요 당한다. 마르잔은 펑크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혁명의 성공으로 돌아올 줄 알았던 아노쉬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부모는 아노쉬를 닮아 혁명가의 기질이 있는 마르잔을 오스트리아로 유학 보낸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처럼 혁명 후 변해버린 이란을 떠난 마르잔은 새로운 절을 찾지 못한다.
 
그녀가 친해진 친구들은 혁명을 꿈꾼다. 그리고 그들에게 혁명과 전쟁을 경험한 마르잔은 흥미를 끄는 존재다. 하지만 마르잔이 생각하는 혁명은 희생만을 요구할 뿐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또 왕정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맞서 목숨을 건 아노쉬와 다르게 입으로만 혁명을 외칠 뿐 술과 음악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친구들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이방인이라는 점도 부담으로 다가온다.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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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잔은 본인이 프랑스인이라고 거짓말을 하는데 그 이유는 인종차별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고국 이란을 떠난 마르잔은 유럽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다. <페르세폴리스>는 두 가지 측면에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첫 번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마르잔의 고독한 성장일기다. 마르잔은 고국인 이란에도, 이방인으로 받아들여지는 유럽에서도 제대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방황과 아픔으로 얼룩진 마르잔의 가슴 아픈 성장 이야기는 이란을 배경으로 삼았음에도 보편적인 정서를 전달한다.
 
두 번째는 이런 개인의 성장담을 통해 정치 역사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어린 마르잔의 눈을 통해 이야기를 하고 그녀가 겪은 고통만을 조명하기에 혁명을 바라보는 일정한 시점과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는 거대 담론에 빠져 산으로 갈 수 있었던 혹은 확연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애매하게 막을 내릴 수 있었던 영화의 중심을 잡아준다. 한 인물을 통해 정치와 역사에 관한 목소리를 내는 영화의 선택은 관객들을 설득시킴과 동시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오는 15일 재개봉을 앞둔 <페르세폴리스>는 현재 시점의 한국 관객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지는 영화다. 정말 조국을 떠날 각오를 했던 이들에게, 조국을 바꾸기를 희망한 이들에게, 바뀐 조국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서로 다른 질문으로 다가오는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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